[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준호 기자= 자동차 디자인을 평가할 때, 디테일이 좋다는 말은 장식이 기준이다. 장식이 있던지, 없던지 그 표현이 세밀하고 정교할 때 디테일이 좋다고 한다. 또 '디테일이 좋다'는 표현은 '완성도가 높다'는 말과도 같다. 디테일은 자동차 디자인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디테일은 장식이 없으면 미니멀(Minmal)이고, 장식이 많으면 맥시멀(Maximal)이다. 미니멀한 요소는 단차와 마감의 매끄러움에 있다. 이를 위해선 부품과 각종 패널은 마치 원래 하나인 양 완성된 형태를 갖춰야 한다. 즉 틈새(Parting-Line)가 치밀하고 비상한 조립 결과물이다.
미니멀 요소로서의 디테일
벤틀리의 슈퍼 포밍(Super forming : 철판을 성형하는 기술로 압력 외에 열도 같이 이용하는 기술. 핫스탬핑이라고도 한다.)은 휀더와 범퍼,보닛의 결합 틈을 없애기 위해 시도한 방식이다. 틈새를 없앰에서 오는 매끈한 디테일은 벤틀리 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보닛과 라디에이터 그릴과의 틈새도 마찬가지다. 이달 초 외관 사진이 공개된 그랜저 IG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보닛 앞부분의 파팅라인을 없앴다. 이전에는 보행자 충돌 시 상해 때문에 라디에이터 그릴 뒤로 보닛 파팅라인을 팠었다. 연질 플라스틱으로 된 그릴이 스틸로 된 보닛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파팅라인이 많으면 지저분해 보이기 마련이다. 보닛의 파팅라인을 없애는 대신 그릴을 입체적으로 돌출시켜 보행자 상해를 줄인다. 보닛도 충돌 시 위험하지 않게 꺾이고 잘 찌그러지게 만들었다. 다만, 이는 그랜저 IG만의 변화가 아니다. 직각으로 곧추선 라디에이터 그릴 이외의 디자인은 거의 다 이렇다.
창문은 디테일에서 커다란 틈새다. 베르토네(Bertone : 이탈리아 카로체리아로 디자인 외주업체)가 디자인한 대우 에스페로나 시트로엥 XM 같은 모델은 이너 필러(Inner-Pillar : 필러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통해 매끄러운 DLO(Day Light Opening-빛이 들어오는 옆 창문들)를 만들었다. 미래지향적으로 신선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지만 현재 양산차를 바라보면 베르토네의 이런 노력은 빛이 바랜 것처럼 보인다. 필러들과 윈도 프레임은 여전하다. DLO는 거대한 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메르세데스 벤츠는 인상 깊은 콘셉트카를 내놨다. Vision EQS는 DLO의 미래지향적 디테일을 보여준다.
Vision EQS 콘셉트는 디테일의 완성체다. 미니멀한 요소와 맥시멀한 요소를 모두 가진다. 먼저 미니멀 요소로 EQS는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카울과 숄더 라인에 틈이 없어서다. 양산차의 카울은 와이퍼와 실내 유입 공기 흡입구를 위해 틈이 있다. 숄더 라인 역시 윈도 개폐를 위해 턱과 틈이 있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디자인에선 이를 크롬 몰딩으로 가린다.
Vision EQS 콘셉트에서 창문은 무늬다. 열고 닫히지 않는다. 보디를 수평으로 가르는 앰비언트 캐릭터 라인 윗부분은 블랙 컬러인데, 이 전체가 유리 같다. 마치 통유리를 가공해 끼워 맞춘 듯하다.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은 블랙 패널의 무늬처럼 보인다.
카울로 가보자. 와이퍼도 없다. 그러니 있어야 할 틈 없이 매끈하다. 루프, DLO, 윈드 실드, 보닛 전체가 광택 있는 블랙 컬러다. 일체화된 완성품 같다.
고든 바그너는 2009년 다임러 AG 총괄 수석 디자이너가 되면서 'Sensual Purity Purist Form 순수한 관능주의의 순수한 형태'라는 디자인 랭귀지를 만들었다. 곡선의 매끈함과 볼륨 있는 풍부함은 관능적이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표현한 형태는 순수하다. Vision EQS 콘셉트는 디자인 랭귀지 탄생 10주년 기념 작품 같다. 디자인 랭귀지를 표현하는 데 있어 100% 완벽하다.
진보와 거리가 먼 사람들은 “창문이 열리지 않고, 와이퍼가 없으면 어쩌란 말이냐”고 반문할 것이다. 꼭 그럴까. 당장 옆 차의 담배 연기도 짜증나고 365일 중에서 쾌청한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가득한 세상이다. 와이퍼도 변화 없이 이어온 지 150년이 지나간다. 이쯤 되면 기술의 퇴보다. 상상력 좀 발휘해보자.
맥시멀 요소로서의 디테일
자율 주행차 시대에 빛은 사람과 자동차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많은 메이커들이 LED 전구로 매트릭스화 한다. Vision EQS 콘셉트 콤비네이션 램프는 그들이 자랑하는 '세 꼭짓점 별' 엠블럼 모양새다. 패널에 레이저 에칭으로 229개를 뚫었다. 장식에 장식을 더한 디테일이다.
같이 선보였던 또 다른 콘셉트 Vision Simplex는 1901년도 모델을 오마주해 만들었다. 이 디자인을 양산한다는 건 상상력을 동원해도 의미 없다. 돈 많은 갑부의 컬렉션을 위한 것이라기에도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Vision Simplex 콘셉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디테일에 있다. 이 당시 자동차들은 당연히 수제작이었다. 볼트 하나, 버클 하나도 하나의 모델만을 위해 존재했다. Vision Simplex 콘셉트는 그런 디테일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스터디 모델이다. 아주 작은 부품이라도 노출돼 시각적 효용성을 보여준다면 가치를 부여할 만 하다. 부품에 시그니처를 새기고, 섬세한 가공을 통해서 미화한다.
그랜저 IG의 3D 라디에이터 그릴엔 파라매트릭 주얼(Parametric Jewel)이란 명칭이 붙었다. 주얼은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다. 장식을 디자인 전면에 내세우겠단 의지다. 그릴은 다아이몬드 패턴으로 차있다. 패턴은 크롬으로 마감해 반짝거리게 했으며, 거기에 프랙탈 폼(Fractal form - 작은 패턴이 모여 동일한 형태의 큰 패턴을 만드는 모형)을 더했다. 다이아몬드 패턴이 모여 큰 다이아몬드를 완성한다. 그것마저도 모자랐는지 양 측면 5개의 다이아몬드는 DRL+턴 시그널로 만들었다. 장식에 장식을 더하는 디테일은 현대차 디자인도 만만치 않다.
내연기관 축소의 압박, 공유경제, 보호무역에 따른 무역전쟁,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등, 작금의 환경은 자동차 메이커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향후 디자인은 매무새, 마감, 완성도를 극강으로 끌어올려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는 전쟁으로 다다를 것이다.
대중 브랜드에서 그런 디자인의 출발을 현대기아차가 끊었다. 솔직히 메르세데스 벤츠는 삼각별이라는 어마 무시한 무기가 있다. 엠블럼이라는 디테일만으로도 소유욕이 끓어오른다. 상대적으로 현대차에겐 오로지 가성비뿐이다. 그 가성비가 옵션과 성능 대비였다면, 지금은 디자인과 디테일로 옮겨갔다. 자회사인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장식과 매끈한 마감으로 치장한 자동차들이 길거리를 수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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