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관세를 낮출 생각이 없다고 못박으면서 대미 자동차 수출에 낀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미국의 수입차 25% 고율 관세 부과 이후에도 현지 판매가격 인상을 자제해 온 현대차(005380)그룹의 가격 정책에 변화가 머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 현대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사진=현대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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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오는 7월 8일 상호관세 유예 시한이 만료와 관련, “모든 국가에 관세 서한을 보낼 것”이라며 유예 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한국·일본 업체가 미국 업체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 협정을 체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한국·일본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25% 관세를 낮출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미국 가격 정책 변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미국 판매가 인상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는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조치에도 미국 내 자동차 가격 인상할 계획이 없다”며 “고객들은 가격에 매우 민감해서 가격을 그렇게 올리면 차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관세 발효를 앞두고 쌓아뒀던 ‘비관세 재고’가 점차 바닥을 드러내면서 미국 판매가격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기아의 올 상반기 역대급 미국 판매 실적도 미국 소비자들의 ‘오르기 전에 사자’는 소비심리 때문으로 해석된다. 시장조사업체 워즈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지난달 미국에서 17만251대를 판매해 사상 최고 점유율인 11.6%를 나타냈다. 1월 10.5%(11만6362대), 2월 10.7%(13만881대), 3월 10.9%(17만2666대), 4월 11.1%(16만2618대)로 올해 들어 매달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고, 4월부터 실행했다. 최근 미국 판매 판매 호조에는 비관세 재고 물량과 현지 소비자들의 ‘막차’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가격 인상을 자제했던 경쟁 브랜드들도 최근 가격을 올리고 있다. 포드는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차종의 미국 판매가격 인상을 결정했으며 토요타도 7월부터 미국 판매가를 평균 270달러가량 인상하기로 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의 여파가 이제 본격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판매가격 인상 시 미국 내 수요가 위축되면서 실적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 관세 사태로 미국 자동차 평균 판매가격이 5만달러(약 6748만원) 이상으로 오르며 미국 평균 중위소득을 훌쩍 뛰어넘게 됐다”며 “중위소득보다 가격이 높으면 차량 구매를 꺼릴 수밖에 없고 이는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모든 업체에 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소득 하위 계층이 관세 민감도를 덜 느끼도록 엘란트라(아반떼) 같은 소형 세단 가격을 소폭 올리고 상대적으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덜한 프리미엄급 차량의 인상률을 높이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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