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준호 기자= 우린 디자인을 논할 때 '디테일이 좋다'란 표현을 자주 쓴다. 디테일은 자동차 세차 용어로 많이 쓰인다. 섬세하고 꼼꼼하게 세차함을 디테일링(detailing)이라 한다. 같은 맥락으로 디자인에서 디테일이란, 세밀한 표현 방식을 일컫는다. 즉, 디테일이 좋다는 건 세밀한 표현 방식이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 디자인에서 세밀한 표현 방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단차와 마감의 매끄러움
단차와 마감 품질을 본격적으로 신경 쓰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후반부터다. 이전에는 단차를 크롬 몰딩으로 가리는 식이었다. 플라스틱과 우레탄, 철판 성형 기술의 발달로 단차는 줄어갔다. 파팅라인(Parting line : 패널과 패널이 맞닿는 경계)의 간격을 누가 최대로 좁히는가를 두고 경쟁했다. 특히 일본차들이 이런 디테일이 엄청난 공을 들였다.
부품은 마치 하나의 면처럼 매끄러워야 했다. 안개등과 방향지시등은 범퍼와 패널에 잘 매립됐다. 컬러도 체육복처럼 지붕부터 바닥까지 통일돼야 했다. 이러니 장식은 사치가 돼 버렸다.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만 남긴 모더니즘 스타일을 추구했다.
이제 100년이 된 바우하우스로부터 태동된 모더니즘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미니멀리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설립된 독일의 건축, 디자인 학교다. 전후 독일의 신속한 재건을 목적으로 쉽고, 빠른 생산을 위해 기능적 디자인을 주제로 삼았다. '절제'와 '단순미'를 강조한 전 현대기아차 총괄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도 바우하우스 철학을 따르는 모더니스트다.
지금도 모더니즘 디자인을 추종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생산자와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아직도 불량률 적고, 싸고, 빠르게 만들길 원한다. 이런 목적에 장식이 절제된 모더니즘 디자인은 잘 부합된다. 물론, 소비자와 디자이너 입장에서 취향이 그쪽 방향인 이유도 있다.
지금은 2019년이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모더니즘은 구 시대의 산물이다. 인문학에선 이미 포스트모더니즘(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사조)도 지났다고 본다. 아직까지도 모더니즘의 사고방식에 머무른다는 건 진부하다.
이제 단차는 좁히고 좁혀 더 이상 좁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급차나 대중차나 파팅라인의 단차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연 강판에 로봇팔로 스프레이 도장을 하는 것도, 플라스틱에 크롬 도금 입히는 것도 같다. 기술의 평등화다. 이는 곧 디테일의 평등화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디테일의 차이를 만들 수 없는 시대이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세밀한 표현 방식을 뜻하는 디테일, 그것의 좋고 나쁨은 장식의 수준에 따라 판가름 나는 시대가 왔다.
둘째, 장식의 첨가
모더니즘을 끝낸 자동차 디자인에서 장식은 부활했다. 판매 돌풍을 일으키는 기아차 셀토스는 콤팩트 SUV 세그먼트에서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심리에선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셀토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조금 큰 크기와 풍부한 옵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디테일에 있다.
셀토스 디자인의 디테일은 '입체성+장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2단 입체 조형이면서, 반짝거리게 하는 다이아몬드 패턴 장식으로 둘러쌌다. 반짝거리는 상단 그릴 바로 아래는 더 반짝거리는 DRL이 위치한다. 시그널 램프도 이에 질세라 빛줄기가 화려하다. 포그램프는 한 술 더 떠 독립된 케이스에 따로 담았다. 모두 장식이고, 원가를 높이는 요소다.
리어 디자인도 같은 맥락이다. 투톤으로 장식이 강조된 루프레일을 시작으로 꼼꼼하게 감싼 스포일러, 크롬 장식의 리어램프, 입체적인 디퓨저, 은색의 스키드 플레이트까지 장식의 연속이다.
영국 브랜드인 재규어와 벤틀리의 변화도 재밌다. 이안 칼럼이 재규어 디자인에 혁신을 가하면서 후드 위의 장식인 리퍼(Leaper : 재규어가 점프하는 자세의 금속 모형)를 제거했다. 안전 규제 이유가 크지만, 어쨌든 사라졌다. 반면, 벤틀리는 새로운 플라잉 스퍼에 후드 장식물 Flying B를 부활시켰다. 이건 플래그십 모델인 뮬산에만 달렸었다.
최근 벤틀리 인테리어는 베르사유 궁전을 보는 듯하다. 황동과 크롬 장식이 화려하다. 원목 베니어도 마치 색깔과 문양이 다른 두 개의 대리석으로 장식한 궁전의 벽처럼 다가온다.
2010년대를 지나면서 모든 자동차에 장식은 일반화가 되었다. 이제 형형색색 변하는 엠비언트(실내 무드등)가 없는 인테리어는 허전하다. 송풍구도 화려해지는 중이다. 벤츠는 크롬 뿐만 아니라 엠비언트 기능까지 넣었다. 단순 망 형태의 라디에이터 그릴도 3D 크롬 장식이 없으면 구시대 산물 같다.
자동차 제조업체에게 장식 디테일은 원가 상승을 불러일으키는 부정적 요소다. 역지사지로 소비자에겐 디테일이 부족한 디자인은 싸구려 디자인이 된다.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달러 넘었다. 자동차는 단순 이동 수단에서 탈피했다. 비용을 좀 더 들이더라도 멋지고, 화려하며, 장식적 디자인을 선호한다.
최근 현대기아차 디자인의 변화가 이렇다. 동급의 모델과 비교해 인테리어나 익스테리어의 화려함이 대단하다. 베트남, 인도, 중국산 저가 모델과 경쟁하기 싫은 이유가 도사리고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을 발 빠르게 반영한 트렌디한 태도이기도 하다.
혹자는 기술 발전보다 겉모습에 치중하는 태도에 비판을 가한다. 겉모습의 화려함은 기술적 우위가 아닌 단순한 감각일 뿐이다. 언제든 따라 하고, 따라 잡힐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엔지니어링인 내연기관은 '성능 개선에 한계에 달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열과 진동과 소음과 싸우며 몇 십 년간 노력해 당기고 당긴 랩타임은 신생 전기차가 한 순간에 추월해 버렸다. 부품 수가 적은 전기차는 배터리 값만 내린다면 생산비도 적게 든다.
내연기관에 들어갈 개발비가 줄고, 전기차의 대중화가 현실화되면, 자동차 업체 입장에선 투자비가 줄고 잉여 자금이 늘어난다. 더군다나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면, 차량 실내에서 여유 시각(視角 : 사물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기본적인 자세)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지금보다 더 화려해질 수 밖에 없다. 앞으로 자동차 디자인은 장식의 디테일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하면 충분이 짐작할 수 있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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