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박낙호 기자] 지난 주말, 올림픽대로 정체구간에서 후방추돌 사고를 당했는데, 직접 사고를 당해보니 풍문으로만 듣던 보험회사의 사고 피해자에 대한 횡포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고,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금융감독원과 국토교통부 등 감독당국도 기본적으로 보험사에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사고는 후방 차량이 필자가 타고 있던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은 사고로 후방 차량 운전자에게 100% 과실이 인정되는 사고였는데, 문제는 사고의 가해차량이 가족한정 특약에 가입돼 있었으나 당시 운전자는 차주의 형인 관계로 특약 위반에 해당되어 자동차 종합보험으로 사고처리를 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하 “
자배법”)에서는 자동차보유자에게 보험가입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책임보험”이 바로 그것으로, 자배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자동차보유자에게 자동차의 운행으로 다른 사람이 사망하거나 부상한 경우에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을 지는 책임보험(이하 “
책임보험”)에 가입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보험사들은 이를 대인(I)로 표시한다. 그리고 제2항에서는 자동차보유자가 책임보험에 가입하는 것 외에 자동차의 운행으로 다른 사람에게 발생한 “재산상 손해”에 대해 2,000만원의 한도 내에서 피해를 배상하는 보험(이하 “
의무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보험회사는 자동차보유자가 책임보험 및 의무보험에 가입하려는 때에는 원칙적으로 계약체결을 거부할 수 없으며(자배법 제24조 제1항), 의무보험을 가입하려는 자와의 계약 체결을 거부한 보험회사에 대해서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제48조 제2항 제3호), 책임보험과 의무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자동차보유자에 대해서도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제48조 제3항 제1호).
따라서 필자로서는 비록 사고 차량에 종합보험은 적용되지 않더라도 자배법에 따라 위 사고로 인한 손해 중 신체 상해에 대해서는 책임보험으로, 차량 수리비에 대해서는 의무보험으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으나, 가해차량 보험사에서는 대물배상의 경우 운전자 한정 특약 위반을 이유로 배상을 할 수 없다며 보험처리 자체를 거부했다.
즉, 보험회사에서 정한 보험약관이 자배법에서 정한 의무보험 가입 조항과 상충되므로 약관에 따라 대물배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의무보험에 관한 자배법 제5조 제2항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는 임의규정에 해당될 때의 얘기이고, 해당 조항이 강행규정이라면 약관으로 그 효력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보험사의 위 주장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자배법에서는 의무보험에 가입할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반할 경우 자동차보유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고, 의무보험 가입을 거부한 보험사에 대해서도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의무보험 가입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의무보험 가입 강제는 2003년 개정 자배법에서 도입된 것으로, 당시 개정이유를 보면,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한 물적 피해 배상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동차보유자에게 대물보험의 가입을 의무화한 것”임을 명시하고 있고 자배법 제1조에 그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책임보험의 경우에는 약관으로도 효력을 배제할 수 없고 이러한 이유로 보험약관에서는 대인(I)의 경우 특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도 배상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데, 책임보험에 관한 제5조 제1항과 의무보험에 관한 제5조 제2항은 법문상 구조가 동일하며, 두 조항 모두 “자동차보유자”에게 “자동차의 운행으로”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을 뿐 자동차보유자의 책임이 보험사와의 합의에 따라 배상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거나 책임 범위를 한정하여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은 없다는 점에서 의무보험과 책임보험을 달리 볼만한 이유도 없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의무보험에 관한 자배법 제5조 제2항도 강행규정으로 해석되므로, 약관에서 그와 달리 규정하더라도 이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서 적어도 자동차사고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보험회사들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과 자배법을 관할하는 국토교통부에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필자의 예상과 달리 금융감독원과 국토교통부 모두 자배법 제3조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의 손해배상책임을 “다른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부상하게 한 경우” 즉 대인 사고에 한정하고 있다는 점과 대물배상에 대한 면책특약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자동차보험료가 인상되므로 그러한 특약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이러한 해석을 뒤집으려면 대법원 판결이 필요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자배법 제3조는 자동차사고에 따른 자동차 운행자의 사실상 무과실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자배법에서 그 책임에 따른 배상에 대해 여러 가지 특례를 규정하고 있을 뿐인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제5조 제2항을 임의규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배법에서는 “자동차보유자”에게 의무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자동차보유자는 “자동차의 소유자나 자동차를 사용할 권리가 있는 자로서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를 의미하므로, 결국 자동차의 소유자는 운전자에 상관 없이 자동차가 운행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물 손해에 대해 2,000만원 한도 내에서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는 보험에 가입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 판례를 보면 자동차종합보험계약약관 중 대인배상(II)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보상범위를 넘어서는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보상하지 아니한다”는 면책조항의 효력에 대해, “이는 피보험자동차의 사고로 인하여 피보험자가 타인에 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을 담보하기 위한 자동차보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사업자인 보험자가 부담하여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이전시키는 것이 되므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데(대법원 2005. 11. 10. 선고 2005다39884 판결), 이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물배상에 대한 예외를 인정한 면책특약은 교통사고에 따른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의무가입 규정을 정한 자배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므로 그 효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를 감독할 의무가 있는 금융감독원 조차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보호장치 마저 무시하는 보험회사들의 잘못된 행태를 용인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보험회사의 위 특약이 유효하다면, 결국 운전자 한정 특약에 가입한 자동차보유자들은 특약을 벗어난 교통사고에 대해 대물배상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 되고, 보험회사들은 의무보험 가입을 거절한 것이 되므로 운전자 한정 특약에 가입한 모든 차주와 보험회사에게 과태료가 부과되어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대물배상 책임보험은 모든 자동차보유자가 기본으로 가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험사들은 특약으로 “다른차량운전담보특약”을 선택적으로 가입할 수 있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감독원이나 국토교통부의 주장과 달리 대물배상의 의무화로 인해 자동차 보험료의 인상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거나 적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며, 설령 보험료 인상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만으로 위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적폐 청산이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인데, 자배법은 교통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서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상승이라는 막연한 이유만으로 보험회사들의 위법한 약관을 용인하는 감독당국의 행태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또다른 적폐이다.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skkang@jehalaw.com)
* 레이싱 트랙 주행을 비롯하여 타임 트라이얼 레이스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상구 변호사의 [강변오토칼럼]을 연재합니다. 강상구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기업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고, 자동차부품 관련 다국적기업인 보쉬코리아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으며,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도 보유하고 있는 등 자동차와 법률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으로 이데일리 오토in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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