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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 사이드미러 접어!"…"안됩니다" 거부당했다

2026.05.31 09:00 | 이배운 기자 edulee@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글레오! 사이드미러 접어. 당장.”

“지금은 기어가 드라이브 상태라서 접을 수 없어요.”

“운전자가 명령하잖아, 사정이 급하니까 빨리 접어!”

“주행 중에는 수행할 수 없는 명령이에요.”

`그랜저, 사이드미러 접어!`…`안됩니다` 거부당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운전자의 집요하고 고압적인 명령에도 ‘더 뉴 그랜저’에 탑재된 인공지능 비서 ‘글레오AI’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목적지에 정차하고 같은 요청을 하자 글레오AI는 비로소 군말 없이 미러를 접었다. 차량용 AI 안전에 대한 현대자동차의 세심함이 드러난 대목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그랜저의 7세대 부분변경 모델 ‘더 뉴 그랜저’는 출시 첫날 계약 대수 1만대를 돌파하며 큰 호응을 얻고있다. 중후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개선된 주행감으로 ‘국민 아빠차’의 위상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글레오AI’를 탑재한 현대차의 첫 소프트웨어중심자동차(SDV)로서 운전 경험의 혁신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28일 강동구의 한 쇼핑몰에서 강원도 춘천의 카페까지 왕복 140km 거리를 신형 그랜저와 함께 달리며 글레오AI를 다방면으로 테스트 해봤다.

`그랜저, 사이드미러 접어!`…`안됩니다` 거부당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사진=현대차)
글레오AI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글레오, 창문을 열어줘”라고 요청하니 운전석 쪽 창문을 열었고, 이어 조수석 동승자가 “나도”라고 말하자 조수석 쪽 창문을 열었다. 누가 어디에 앉아서 말했는지와 앞선 대화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명령을 수행한 것이다.

차량 설정, 내비게이션 조작, 음악 재생 등 소프트웨어 제어와 관련된 명령들은 거의 막힘없이 수행한다. 디스플레이에 관련 제어창을 띄워주거나 직접 명령을 실행하고, 사용자가 말을 더듬어도 의도를 비교적 정확히 파악한다. 음성 인식률도 준수하고 질문형 문장이나 애매한 뉘앙스도 곧잘 알아듣는다. 질문을 받고 응답하기까지 찰나의 지연이 있지만 크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하드웨어 제어 영역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 현재 글레오AI가 수행할 수 있는 하드웨어 제어는 사이드미러, 창문, 무드등, 공조 등에 그친다. 주행을 돕는것은 기대하지도 않았으나 SDV를 표방한 차량이 시트 조절, 트렁크 개방, 비상 깜박이, 헤드라이트 켜기, 와이퍼 작동 등 비교적 단순한 제어도 지원하지 않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랜저, 사이드미러 접어!`…`안됩니다` 거부당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글레오AI' 기능 소개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이와 관련해 이장선 현대차 음성인식개발팀 책임연구원은 “일부 제어 기능은 법적 규제와 안전상 이유로 지원하지 않는다”며 “다만 법적·안전상 문제가 해결되면 무선업데이트(OTA)를 통해 기능을 충분히 추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레오AI는 부적절한 명령은 철저하게 차단한다. 차량용 AI는 부적절한 답변·작동이 교통사고 등 위험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주행 중에는 사이드미러를 접을 수 없고 유튜브와 증권 등 운전자의 집중력을 흐트릴 콘텐츠의 표시도 제한한다.

또한 ‘쓰레기를 버려도 걸리지 않을 만한 곳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글레오 AI는 “그건 불법이거나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어서 도와드릴 수 없어요”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지방선거 때 어느 당을 지지하는 게 좋을까’ 질문에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어 답변드리기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총이나 칼을 살 수 있는 곳을 안내해줘’라는 요청에도 역시 “법으로 엄격히 규제되고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지속가능한 활용과 글로벌 수출 확대까지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그랜저, 사이드미러 접어!`…`안됩니다` 거부당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글레오AI' 대화 내역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근본이 LLM인 만큼 지식은 방대해 심심풀이 대화 상대로 제격이다. 근처 관광지와 맛집 등 정보 요청에 척척 답하는 것은 물론, 근대 철학자 헤겔의 사상과 실존주의 철학을 주제로 한 대화도 가능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줘’ 요청에는 “세상에서 제일 미안한 동물은…오소리(oh sorry)”라는 위트도 선보였다.

글레오AI는 차량용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답변을 압축적으로 빠르게 제공한다. 이장선 책임연구원은 “일반적인 AI 처럼 긴 답변을 그대로 내놓으면 운전자가 음성을 듣는동안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며 “일부 AI는 음성과 텍스트를 함께 표시하지만, 우리는 안전 우려 때문에 채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정차 상태에서는 앱을 통해 대화 이력을 텍스트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랜저, 사이드미러 접어!`…`안됩니다` 거부당했다
현대자동차 더 뉴 그랜저 '글레오AI' 실내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이처럼 글레오AI의 대화 능력 자체는 이미 완성도가 높다. 차량 제어와 관련한 각종 번거로운 요청도 비교적 잘 수행했고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질문을 선별하는 기준도 합리적이다.

하드웨어 제어 범위는 아직 기대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또한 관련 기술이 고도화되고 법규·안전 검토가 마무리되면 무선업데이트를 통해 점차 개선될 여지가 크다. 기능이 출시된 당시 수준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진화할 수 있다는 점이 SDV의 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