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준호 기자= 쌍용차 주인인 마힌드라의 파완 고엔카 사장이 최근 방한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쌍용차는 11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어서다. 마힌드라가 인수 후 유상증자 형태로 1,300억 원을 지원했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 정도의 효과 밖에 없었다. 고엔카 사장의 방한은 경영 정상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만큼 쌍용차는 위기다. 최악의 경우 다시 한 번 세계 자동차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
지난해 쌍용은 렉스턴 스포츠 칸과 코란도를 출시했다. 없는 살림에 대대적인 홍보 행사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내수와 수출 총 판매량은 13만 5,235대로 전년대비 5.6%나 하락했다. 기가찰 노릇이다. 여기엔 코란도의 부진이 크다. 렉스턴 스포츠는 국내 시장에 전무후무한 픽업트럭 세그먼트를 독점해온 차량이다. 지난해 하반기 경쟁자 쉐보레 콜로라도가 등장했지만 선방하고 있다. 문제는 진짜 신차 코란도다.
이름부터 희한한 '뷰티풀 코란도'는 2019년 3월 출시 이래 8월 전까지 매월 판매량이 추락했다. 신차효과를 봤던 3월은 전월대비 787.9%의 증가를 보였다. 바로 다음 달엔 20.4%, 6월엔 전달 대비 29.7%나 뚝뚝 떨어졌다. 연말 연식 할인을 했던 12월엔 그나마 형편이 나아져 2,512대를 팔았지만 전체 판매량 순위 23위로 밀렸다. 구형 모델인 현대차 코나, 투싼에도 밀리는 판국이다.
코란도 시작은 좋았다
쌍용차는 코란도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다. 이름을 1983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37년의 역사다. 코란도는 알다시피 'Korean can do 한국인은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1996년에 등장한 코드명 KJ 뉴코란도는 당시 유행이었던 미국발 레트로 감성이 접목된 디자인이었다. 13년 만에 디자인을 바꾼 셈이다. 1세대 캐릭터가 고스란히 담겼다.
뉴코란도는 쌍용차 전성기를 이끌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름과 정통 Jeep 스타일이긴 했으나, 독창적인 디자인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신차 생명주기인 9년을 채우고 코란도는 단종됐다. 그 사이 쌍용차는 대우자동차, 이어 상하이자동차에 팔려가며 풍파를 겪었다.
다시 옛 명성을 살리기 위해 '한국인은 할 수 있다'라는 이름을 부활시킨다. 큰맘 먹고 이탈디자인(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이끄는 이탈리아 카로체리아)에 디자인을 의뢰한 코란도 C가 그것이다. 2011년 등장해서 2019년까지 총 2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2015년 티볼리 등장 전까지 꾸준히 판매량을 견인했지만, 히트작까진 아니었다.
C를 떼버린 코란도 디자인의 경우의 수
티볼리는 쌍용차를 처음으로 흑자 전환을 시켜준 모델이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쌍용차는 C를 뗀 코란도로 완벽한 재기를 노렸다. 새로운 코란도가 선택할 수 디자인 선택안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코란도 C처럼 아예 새로운 디자인으로 환골탈태하는 경우
둘째,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뉴트로(newtro : new + retro의 합성어로 새로운 레트로의 붐) 디자인
셋째, 베스트셀링 티볼리 디자인을 중심으로 둔 패밀리 룩
쌍용차 경영진, 상품기획과 디자인팀이 선택한 안은 세 번째였다. 결과론적으로 좋지 못한 선택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분석해봤다.
패밀리룩은 아이덴티티 픽토그램화가 이뤄져야 한다.
티볼리 성공은 쌍용차의 자만심을 키웠다. 내부에서도 '한국 MINI'라며 칭송했다고 한다. 60주년을 막 넘긴 MINI와 4년을 막 넘긴 티볼리와는 숙성된 헤리티지에서 오는 아이덴티티 가치가 비교불가다.
패밀리룩은 기본적으로 디자인을 픽토그램(pictogram :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는 그림)화 할 수 있어야 한다. 지프 랭글러와 폴크스바겐 비틀을 보자. 단순한 아이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있다.
티볼리 디자인도 독특한 편에 속하지만, 픽토그램화 할 특징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티볼리 디자인을 패밀리룩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는다면, 임팩트가 약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코란도는 티볼리 보다 위급이다. 아우 보다 별반 나은 모습이 없는 형을 자랑하긴 힘들다. 벤츠의 C 클래스가 S 클래스를 닮았기에 좋아 보이는 거지, S 클래스가 C 클래스를 닮으면 망한다. 이게 상식이다.
패밀리룩은 한물갔다
국내 시장에서 패밀리룩으로 성공한 브랜드는 기아차가 거의 유일하다. 그것도 10년 정도 잠깐이다. 성공한 이유는 '타이거 노즈 마스크'라는 픽토그램이 있어서다.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 디자인을 진두지휘했던 당시 기아차는 완벽한 패밀리룩을 구현했다. 지금은 어떨까?
스팅어 이전까지 라인업에선 패밀리룩 뉘앙스가 강했다. 최근 등장하는 모델들은 완전 다르다. 셀토스를 시작으로 쏘울, K5, K7 모두 각자의 개성이 강하다. 피터 슈라이어가 현업에서 멀어진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같은 시리즈인 K7과 K5만 비교해봐도 티볼리와 코란도는 얼마나 닮은 디자인인지 알 수 있다.
기아는 “패밀리룩을 고수하는 디자인은 한물 갔다”고 판단한 셈이다. 무려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패밀리룩의 최대 단점은 디자인이 고만고만해 고인 물처럼 보일 수 있다.
기아는 또 다른 선택적 일보(一步) 전진을 하고, 소비자는 새로운 트렌드로 받아들인다. 국내 시장에서 현기차 디자인을 무시할 수 없다. 글로벌로 비교해봐도 솔직히 현기차 디자인은 꽤 높은 수준이다. 감각 좋은 디자이너를 해외를 막론하고 끌어모았다. 현기차가 포털에서는 악플에 시달리지만, 내수 시장 독과점은 무너진 적이 없다. 현기차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디자인을 주목하듯이 쌍용차는 현기차 디자인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
뉴트로(Newtro)가 붐이 될 조짐이다
뉴트로는 New + Retro의 조합어다. 새로운 복고풍이란 뜻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또 인간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라고 했다. 앨범을 들춰 추억을 꺼내 듯, 레트로는 디자인에서 잊을 만하면 나오는 코드다.
레트로로 먹고 사는 그룹은 많다. 그중 하나가 크라이슬러다. 한때 미국의 빅 3 반열에 올랐지만 크라이슬러는 항상 허덕였다. 심폐 호흡기를 달고 사는 크라이슬러가 잠깐 꿈틀했던 적은 레트로 디자인의 300C 모델이 나왔을 때다. 지프 디비전마저 없었다면, 심폐 호흡기조차도 달지 못하고 바로 사망이었다. 지프 아이콘인 랭글러의 국내 판매량은 꾸준하다. 지난해 말에는 픽업트럭인 글래디에이터가 등장했다. 랭글러와 모습이 판박이지만 미국 시장에선 대박을 쳤다.
레트로 디자인의 대표인 피아트 500은 유럽에서 MINI보다 더 많이 팔렸다. SUV의 인기로 단종될 줄 알았던 랜드로버 디펜더가 뉴트로 디자인을 입고 등장했다. 포드도 1966년 등장한 SUV 브롱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디자인은 1세대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린 뉴트로다. 혼다 전기차 전용모델 e는 1970년대 디자인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에 현대차도 포니를 전기차로 부활시키려 한다. 패션에서 불기 시작한 뉴트로가 자동차 디자인에까지 번지는 중이다.
코란도 디자인 기획은 잘못됐다
결론적으로 코란도 실패 원인은 디자인에 있다. 쌍용차에게 신차 개발 기회는 많지 않다. 흑자는 2016년 단 한 번뿐이었다. 치밀하고 치밀하게 트렌드와 경쟁사, 소비자 여론을 조사하고 반영해야 한다. 뷰티풀이 붙은 모델명만 봐도 '한국인은 할 수 있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쌍용차는 노사문제와 더블어 이리저리 팔려 다니는 신세였다. 코란도는 이런 쌍용차에게 '쌍용차는 할 수 있다.'라는 정신을 보여줘야 했다.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혁신적이었야 했다. 그런데 최대 히트작 티볼리에 자만했다. 위험과 도전 대신에 안주를 택했다. 부딪쳐서 이겨내려는 정신보다 외모 치중에 급급한 뷰티풀로 남았다.
코란도 레트로 디자인은 이미 시도한 바 있다. 2015년 XAV Adventure Concept(이하 XAV)는 (구)코란도의 아이덴티티를 품은 레트로 스타일이었다. 원형 헤드라이트는 레트로 디자인의 핵심이다. XAV 헤드라이트는 반원이다. 지금 나온 랜드로버 디펜더와 비슷한 형태다. 그만큼 XAV 레트로 해석은 디펜더보다 빠른 셈이다.
또 다른 매력은 앞쪽 오버 휀더다. (구)코란도의 플랫 휀더는 아니지만, 특유의 깊게 파고드는 턴 시그널 램프를 휀더와 클래딩 사이에 잘 조합했다. 4도어 프로파일이지만 2도어였던 (구)코란도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해석이다. 디펜더나 랭글러처럼 2도어 모델로 확장해도 무리가 없다.
뷰티풀 코란도를 보는 대중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구)코란도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남아 있다. XAV 콘셉트를 잘 다듬어서 뷰티풀 대신 '파워풀' 또는 'The KORANDO' 또는 '돌아온 코란도'로 등장했다면 좋았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위기에 몰리지 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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