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장희찬 기자= 지난달 영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전세계 모터사이클 팬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클래식 모터사이클 명가인 노튼(Norton Motorcycle)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현재 노튼은 30만 파운드(약 4억6천만원) 가까운 세금을 체납했고 지불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4억6천만원은 개인에게는 큰 돈일 수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특히 노튼과 같은 글로벌 유명세를 탄 브랜드에게는 특히)는 적은 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세금마저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노튼이 근래 얼마나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노튼은 이미 몰락과 재기를 겪었다. 1898년 아직 한국이 대한제국이던 시절 창립된 이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클래식 모터사이클 침체기와 함께 사라졌다. 2008년 다시 불어온 레트로 트렌드를 등에 업고 재기에 성공했다. 최신 트렌드에 맞는 레트로한 어패럴과 모터사이클을 동시에 공략하면서 마니아 및 전문가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화려하게 부활, 기세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으로 보였던 노튼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놓인 것에 대하여 많은 분석이 오간다. 경영 방만 혹은 전세계 모터사이클 시장 침체 등등 다양한 의견이 오가지만 이 가운데 공통 분모는 바로 클래식 모터사이클의 효용성 부족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불어온 레트로 열풍은 과거를 미화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장르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패션부터 게임 업계까지 여파를 미치면서 마치 파도처럼 모터사이클 장르에도 파문이 일었다. 그로 인해 모터사이클 업계에도 클래식 강자가 속속 다시 등장했다. 로얄엔필드, 노튼, 트라이엄프 브랜드가 그것이다.
이런 클래식 열풍은 적어도 모터사이클 업계에서는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 모터사이클의 대세는 듀얼퍼포즈, 어드벤처 장르 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아메리칸 클래식 대명사 할리데이비슨 마저도 팬-아메리카라는 어드벤처 모터사이클 컨셉트를 공개하며 어드벤처 장르의 인기는 앞으로 몇 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패션, 게임과 같은 장르에서는 아직도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 시장 규모도 커지면 커졌지 줄지 않는다. 대체 모터사이클 장르는 무엇이 달라 레트로 열풍이 꺼지는 촛불처럼 금새 수그러든 것일까? 이는 모터사이클 장르의 특별함 때문으로 추정된다.
먼저, 모터사이클은 안전이 중요하다. 차량과 달리 사방이 개방돼 안전은 필수불가결한 문제이다. 클래식 모터사이클은 대체적으로 네이키드 스타일을 지닌 F타입 차량이 대다수다. 이러한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안전문제에 취약하다.
최근 대두된 어드벤처 장르의 바이크는 다양한 가드파츠와 ABS로 무장한다. 사용자의 안전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클래식 모터사이클 안전성은 라이더의 지갑을 여는 데 장애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기존 클래식 모터사이클 브랜드는 이런 문제에 다소 소홀했다. 아직도 구시대적인 카뷰레터 방식을 사용한다거나, ABS 미탑재로 가격 대비 미흡한 성능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오로지 디자인에 편향된 제품 출시는 장기적으로는 라이더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또 다른 문제는 고객 다양성 부재이다. 모터사이클 장르의 특성상, 차량만큼 대중적일 수는 없다. 물론 저배기량 모터사이클은 가격적 편의성과 개발도상국 시장이 커 대중성을 있다. 고배기량 모터사이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이라 마니아 수요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래식 모터사이클 한 장르만 생산하기에는 고객 다양성이 너무나도 떨어진다.
결국 클래식 모터사이클 브랜딩을 고집하였던 로얄엔필드나 트라이엄프 또한 히말라얀, 타이거와 같은 어드벤처 장르를 출시하며 포트폴리오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노튼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클래식 모터사이클에만 집중하면서 패착으로 작용했다.
200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한 클래식 열풍은 기존 모터사이클 브랜드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 준 것은 틀림없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했지만 빠른 트렌드의 변화도 수반했다. 최근 유행한 어드벤처 모터사이클 또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떻게 트렌드 변화가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노튼의 몰락에서 볼 수 있듯이,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자연 뿐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슬픈 현실이다.
노튼을 제외한 다른 클래식 업체는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자신들이 그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로얄엔필드 히말라얀은 클래식과 어드벤처 모터사이클의 결합을 시도,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 클래식 모터사이클 업체를 장수기업 명단에 올릴 수 있을까.
ⓒ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