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마디에 車 또 날벼락…셈법 복잡해지는 전자업계

by정병묵 기자
2026.01.27 17:14

트럼프 "한국車 등 관세 15%에서 25%로 즉각 인상" 으름장
현대차, 25% 상향시 연 손실액 10.8조원…일·EU 대비 불리
가전업계, 상호관세 15%에 철강에도 50%…적자 지속 우려
"갑작스런 관세 인상 당혹…미국 현지 생산 늘어날 수밖에"

[이데일리 정병묵 공지유 기자] 지난 1년간 대미 수출 관세로 몸살을 앓았던 산업계가 또다시 관세 패닉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뜬금없이 관세 상향을 운운하며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경영계획도 다 확정한 상태에서 대미 수출에 먹구름이 다시 드리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2025년 3월 24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210억달러 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 미 연방 의전 서열 3위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왼쪽 첫번째)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오른쪽에서 첫번째) 등이 정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AP)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한국 입법부가 미국과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한국산 자동차, 목재, 의약품 및 기타 모든 상호 관세 품목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통보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 관세를 25%에서 15%로 내리는데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 입법이 빨리 이뤄지지 않아 이러한 합의 시행을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즉흥적인 엄포일 수 있지만 지난해 관세로 몸살을 앓았던 완성차 업계의 심정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4월 미국의 25% 관세 부과 이후 2~3분기에만 총 4조6352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액을 거두었음에도 양사 합산 연간 영업이익은 18.8%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 말 한마디에 5조원 가까이 증발한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 말대로 대미 자동차 수출 관세가 15%에서 25%로 오르면 손실 폭은 더욱 커진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 합산 연간 관세 손실 추정액은 15% 적용 시 6조5000억원인데, 25% 적용 시 10조8000억원으로 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현 11~12%대에서 더 상향해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유럽연합(EU)에 대한 관세 상향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토요타, 폭스바겐보다 훨씬 더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하게 된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관세 리스크를 털었다 해도 현 15%도 많은데 25%로 또 올린다니 당혹스러울 뿐”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대응할 힘이 없는 약소국의 설움”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미국 현지 생산 물량이 늘 수밖에 없고 국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자업계도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8월부터 현행 10%였던 상호관세가 15%로 오르면서 가전업계도 관세 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직면했다. 여기에 더해 가전제품에 들어간 철강에도 50% 품목 관세를 내면서 부담이 더 커졌다.

LG전자는 관세 인상에 따른 지난해 연간 부담을 약 6000억원으로 추정한 바 있다. 지난해 4분기에는 9년여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TV와 가전 사업에서 지난해 4분기 적자 폭이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상호관세가 25%까지 높아질 경우 국내 기업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가 25%에서 15%로 내려가며 일단락됐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인상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만큼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해 생산지 조정 등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뉴베리 공장에서 세탁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멕시코 공장에서는 TV와 냉장고, 건조기 등을 만든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세탁기·건조기를, 멕시코 공장에서 TV와 냉장고, 조리기기 등을 제조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상호관세가 25%까지 올라가면 이 같은 생산지 최적화 전략에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내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거나, 미국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 멕시코 공장 가동률을 더 높이는 등 포트폴리오 재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불확실성이 큰 만큼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필요 시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반도체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한미 무역 합의에서 미국으로부터 반도체에 대해 다른 나라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로 이 같은 합의가 깨져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미국 내 생산을 하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100% 관세를 낼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을 겨냥해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쪽이 발 빠르게 대응하면 리스크를 신속히 없앨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LS증권 정다운 연구원은 “이번 발언으로 ‘트럼프와의 협상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의구심이 부각되며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우리나라 국회가 신속하게 입법하고 이에 따른 트럼프의 ‘치적 홍보용 액션’으로 마무리될 경우 변동성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