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2100억원 출혈…車관세 25%→15%, 도대체 언제부터
by이배운 기자
2025.08.26 15:18
한미정상회담 관세 합의 재확인…발효 시점은 '안갯속'
"돌발 악재 없어 다행이지만"…車업계 깊어진 '한숨'
정의선 36조원 대미 투자, 남은 협상 지렛대 될까
"회담 분위기 좋아…조기 발효, 추가 인하 노려볼 만"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25%에 달하는 자동차 관세 인하 시점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지난 4월부터 이어진 미국의 수입차 25% 관세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는 매달 수천억원대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관세 인하 발효 시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기를 기대했지만 뚜렷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아 업계에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 경기도 평택항 동부두 내 기아 전용 부두 야적장에 선적을 기다리는 차량 수천대가 세워져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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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직후 “우리는 거래를 완료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들(한국)은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지만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과거 합의대로 거래를 마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발언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15% 관세 합의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미 양국은 지난달 관세 협상에서 한국산 자동차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한 바 있다.
문제는 발효 시점이다. 정치적 쇼맨십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 성향상 한미 정상회담 성과 발표와 동시에 관세 인하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지만 결국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회담이 안보·국방 등 주요 현안 위주로 진행되면서 개별 품목 관세 논의는 후순위로 밀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회담이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마무리되고 돌발 악재가 불거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이르면 오늘 미국 측에서 관세 발효 시점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소식이 없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관세 인하 지연에 따라 업계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25% 관세 영향으로 지난 2분기(4~6월) 영업이익이 총 1조 6000억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단순 계산하면 매달 약 5333억원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이를 기준으로 25% 대신 15% 관세가 적용될 경우 월 손실액은 약 32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즉 관세 인하 발효가 한 달 늦어질 때마다 약 2100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를 하루 평균 손해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7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손실 규모는 신차 출시 지연, 연구개발 투자 여력 축소 등 파급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긴장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 수출 경쟁 상대인 일본과 유럽연합(EU)도 상황은 비슷하다. 앞서 일본과 EU는 기존 27.5%였던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지연되면서 여전히 27.5%의 관세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추가 조건을 내걸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EU에 미국산 공산품 관세 인하와 농수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이를 법제화해야만 자동차 관세 인하를 발효하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한국에도 농축산물 시장 개방 등 추가 요구가 뒤따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다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에 총 260억 달러(한화 약 36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면서 협상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이는 지난 3월 발표한 210억달러 투자 계획에서 50억달러를 늘린 것으로, 증액분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 공장 신설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정 회장의 미국 투자 계획을 두고 “위대한 회사”라고 공개적으로 치켜세우며 만족감을 드러낸 적 있다. 이번 대규모 증액 투자 발표가 추가적인 협상 단계에서 한국 측의 유력한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관세 문제는 이제부터가 진검 승부다. 실무 단계에서 세부 협상과 후속 서류 작업을 신속히 진행해야 발효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이나 유럽보다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일수록 유리하다. 정상회담 분위기도 한국이 가장 좋았던 만큼 관세 인하 조기 발효에서 나아가 관세 추가 인하 여지도 만들어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자동차 부품업계는 15% 관세도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완성차 업체보다도 타격이 큰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보조에 나서야 한다”며 “자동차 산업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려운 만큼 지원 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