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브랜드 히스토리(3) - 격동하는 세계 시장과 푸조의 21세기

by박낙호 기자
2016.06.07 15:17

[이데일리 오토in 박낙호 기자] 선택과 집중으로 버티는 21세기

20세기 말 푸조는 소형 라인업과 대형 라인업의 온도차가 극명한 불균형 상태에 놓였다. 이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했다. 소형 라인업에서는 206과 306, 307이 연이어 까브리올레와 스테이션 왜건은 물론 스포티한 GT, 그리고 WRC에서 맹활약한 아이덴티티를 더한 RC 등을 선보이며 ‘다양화’의 가속 페달을 더욱 깊게 밟았다. 하지만. 407, 그것도 쿠페 모델까지 끌고 온 중형과 605을 거쳐 607에 이른 대형 라인업들은 소형 라인업에 비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중형 이상의 시장에서 이미 지속적인 부진에 고민하던 푸조는 206의 생산을 담당하던 영국 라이튼 공장을 폐쇄하고 이를 슬로바키아로 옮기며 효율성 개선을 노렸지만 영국내 보이콧 운동이라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다.

게다가 2008년 서브 프라임 사태를 겪으며 생산이 감소하며 브랜드 전반의 큰 위기를 맞이하는 사태에 이른다. 전통적으로 유럽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유럽 시장의 경제가 경직된 이 사태로 인해 푸조는 5년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며 회생 가능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2010년에 한시적으로 마련되었던 신차구매 지원 정책 덕분에 판매 및 생산이 크게 증가하는 듯 했지만 유럽 시장의 혈기를 되찾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프랑스 정부의 긴급 자금 지원과 공제 혜택 등의 지원책으로 공장폐쇄 및 통폐합의 분위기를 막을 수 없었다. 결국 PSA는 2013년 기준으로 프랑스 내 생산량이 2012년 대비 15.7% 감소한 93만대 수준에 그치며 성장이 경영의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공장 폐쇄와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를 대응하는 푸조는 프랑스 공장의 조직개편과 러시아와 남미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의 지출 절감으로 2015년까지 15억유로의 비용 절감 등을 골자로 한 대응 정책을 마련했고, 브랜드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손질한다. 이미 생산 및 판매를 중단한 407과 605은 후속 모델 없이 중형 모델인 508로 통합됐고, 3008, 4007과 같은 시장성이 높은 크로스오버 모델에 집중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다.



푸조 가문의 벽이 무너지다

한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유로존 부채위기로 유럽 자동차 판매 급감으로 인해 실적 부진에 빠진 GM은 2012년 3월 유럽 실적 개선과 PSA의 자금 조달을 돕고 부품 공동 구입과 제품 개발 등의 협력 강화을 위해 PSA의 지분 7%(4억 달러 규모)를 인수했고 2013년 12월 이를 다시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두 그룹 간의 불화설이 제기 됐지만 GM은 “두 회사간 협력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Peugeot 308 for China


하지만 GM과 달리 PSA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PSA는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2014년 푸조는 중국 둥펑자동차와 프랑스 정부에 회사 지분 14%씩을 매각하는 증자안을 승인했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PSA의 최대 주주는 둥펑자동차와 프랑스 정부로 변경됨과 함께 두 세기 동안 이어진 푸조 가문의 경영 체제가 막을 내렸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시작된 푸조 가문의 경영 방식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는 살아 남았지만 급변하는 세계 자동차 산업에 대응하기에는 다소 둔했다. 근래 유럽 시장에서는 선전했으나 그 외 시장에서는 마땅한 시장을 확보하지 못했고, 타 브랜드와의 획기적인 연합전선 가문의 경영권을 확보하는데 집중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PEUGEOT_BOXER


생존을 위해 협력을 택하다

한편 20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푸조는 브랜드의 생존을 위해 꾸준한 협력과 합작을 이어왔다. 1878년 설립된 세벨은 21세기에 들어서도 푸조 806, 807의 형제 모델이자 유럽의 대표적인 미니밴 모델인 시트로엥 에바시옹, 란치아 제타와 같은 유로밴의 혈통을 이어나가도록 만들었다. 물론 최근 피아트 그룹이 속한 FCA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악재가 있지만 여전히 유로밴의 생산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 브랜드와의 협력도 이어졌다. 2002년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성공적인 협력으로 평가 받는 PSA그룹과 토요타의 합작회사 TPC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체코에 위치한 TPCA는 푸조와 시트로엥 그리고 토요타의 소형 모델 개발 및 생산 거점으로 효율성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충족시킨다. 연간 약 30만 대의 차량들이 생산되며 현재는 푸조 108과 시트로엥 C1 그리고 토요타 Aygo가 생산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미쓰비시와도 손을 잡는다. 2008년 ‘PMCA Rus’ 공장을 공동 설립하며 러시아 진출에 나선 것에 이어 2009년 하이브리드 및 차세대 차량 개발의 협력을 약속하는 제휴를 맺고 차량 및 기술 관련의 적극적인 교류에 나선다. 당시 푸조는 ‘i-MiEV’의 푸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순수 전기차 iON을 2010년 공개하고 아웃랜더와 RVR을 기반으로 4007과 4008의 개발을 보다 효율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미쓰비시를 통해 이득을 본 푸조지만 미쓰비시는 미국 내 성희롱 사건과 차량 품질 문제 및 이런 저런 문제에 소극적인 대응으로 자동차 사업부를 외면하는 미쓰비시 그룹의 태도 등 숱한 내홍을 겪으며 실적 부진은 물론 경영 위기까지 내몰린다. 이때 푸조는 미쓰비시의 지분을 인수하고 대주주에 오르고는 ‘푸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를 추진했으나 미쓰비시가 이를 거절하며 협력 관계 형태를 유지한다.

Peugeot-Ion_Concept


타 브랜드와의 합작이나 협력은 위기가 이어졌으나 1985년부터 합작 관계를 유지해온 ‘둥펑PSA’의 성적표는 무척 양호하다. 둥펑PSA는 푸조 307, 207, 408을 비롯하여 시트로앵 계열의 C4 콰트르, 엘리제, C5, C2와 C-트리옹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세단에 특화된 중국 시장에 맞춰 308을 기반으로 중국 및 신흥 시장 판매용 모델인 408을 개발하고 현재 2세대 408까지 판매되고 있다.



멈추지 않는 모터스포츠의 열정

1980년대 WRC를 호령했던 푸조는 1990년대에는 세계 스포츠카 챔피언십과 F1 등에 집중한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푸조는 투어링 카로 다시 눈을 돌렸다. 푸조 406을 시작으로 푸조 306 GTi는 유럽은 물론 세계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차량이 됐고 푸조 앞으로 도착하는 트로피의 수도 점점 늘어났다.

브라질을 비롯해 남미 시장에서 유행하던 스톡카 스프린트 레이스에도 뛰어 들어 꾸준한 활약으로 남미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기도 한다. 한편 WRC에서도 철수를 선택한 2005년까지 푸조는 206과 307 등을 대회에 투입하며 꾸준히 타이틀 경쟁을 펼쳤고 스바루, 미쓰비시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2010 Peugeot 908 HDi FAP


한편 공을 들이던 내구 레이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20세기 말부터 타 브랜드에게 그리고 21세기에는 아우디에게 번번히 막혔지만 꾸준히 경쟁력을 과시했던 푸조는 2009년, 아우디를 꺾고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908 HDi FAP로 원 투 피니시를 기록하며 세계 최고의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르망에서 아우디를 누르는 쾌거를 이뤘지만 푸조 경영 문제로 인해 2012년 철수를 결정하며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푸조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푸조는 시트로엥 소속으로 WRC의 황제 자리에 오른 세바스티앙 로브와 함께 2013년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에서 세계 기록을 경신한다. 그리고 2015년, 푸조는 25년 만에 다카르 랠리에 복귀를 선언한다. 복귀 첫 해에는 레드불과 손 잡은 미니가 우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지만 이듬 해 스테판 피터한셀과 시릴 데프레 그리고 세바스티앙 로브를 앞세워 26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푸조 한국의 문을 두드리다

푸조가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건 무척 오래된 일이다. 지난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기아자동차를 통해 대형 세단인 604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됐다. 당시 가격이 2,300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으로 인해 극소수만 판매됐다. 하지만 1981년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로 인해 604의 생산이 중단됐다. 1990년 대에는 동부산업을 통해 306, 405, 406, 605, 806 등을 선보였으나 외환위기와 함께 철수한다.

한국 시장에서의 푸조의 시간은 2003년, 다시 기록되기 시작했다. 한불모터스가 새로운 딜러 계약을 맺어 소형 해치백 206의 하드톱 오픈카 버전인 206CC를 들여왔고 디젤 승용 차량의 판매가 허용된 2005년부터 라인업 확장에 나선다. 특히 효율이 높은 HDi 엔진을 앞세워 강조하여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게다가 높은 효율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에너지 위너상을 수상까지 하는 특이한 이력을 남긴다.

푸조 508


206, 307 등 푸조 소형 차량들은 귀여운 외모와 합리적인 가격, 높은 효율성 등을 앞세워 엔트리 수입차 시장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307SW는 넓은 적재 공간을 앞세워 세단이 아닌 왜건 모델도 한국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다. 다만 독일 브랜드의 성장과 경제 위기 등의 여파로 한불모터스가 2009년 워크아웃을 선언하며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한불모터스는 푸조 브랜드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고 시트로엥 브랜드까지 국내에 론칭하며 워크아웃 중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014년 말 푸조, 시트로엥의 딜러권을 연장한다.이후 한불모터스는 제품 라인업을 확장하며 3008 밀레 에디션은 물론 2008, 308SW, 308은 물론 508과 508RXH 그리고 고성능 모델인 308 GT등을 출시하며 재기의 청신호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