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버틴 현대차그룹 '큰 선물'…엔비디아 달고 테슬라 쫓는다

by정병묵 기자
2025.11.02 17:07

엔비디아와 국내 피지컬 AI 혁신 생태계 조성 협약
5만장 블랙웰 GPU 활용해 통합 AI 모델 개발 검증
5만장 도입 시 테슬라 이어 세계 2위 컴퓨팅 역량
스마트팩토리, 로보틱스 고도화 전략에도 '단비'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회동이 열린 10월 31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 대통령에게 “이번에 관세 관련해서 너무 감사드린다. 정부 분들이랑 너무 잘해 주셔서 제가 큰 빚을 졌다”라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최근 정부가 대미 자동차 수출관세 인하 협상을 이끌어 냈기도 했지만 이날 엔비디아 GPU 26만대 국내 공급 계획에 대한 감사 표시로도 해석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엔비디아와 광폭 협력으로 미래 인공지능(AI) 기반 모빌리티 분야 선도를 위한 중요한 초석을 다졌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중심차(SDV) 개발은 물론 스마트 팩토리, 로보틱스 등 그룹의 미래 중점 과제를 실현하는데 날개를 달게 됐다.

양사는 단순 파트너십을 넘어 차세대 AI 칩 ‘엔비디아 블랙웰’을 기반으로 ‘피지컬 AI 기술 공동 혁신’이라는 새로운 협력 단계로 나아간다는 전략이다. 피지컬 AI는 가상 환경뿐만 아니라 자율주행·스마트 팩토리·로보틱스 등 실제 환경에서 센서 등 하드웨어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계가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이 가능한 AI 기술이다.

이번에 현대차그룹이 제공받는 블랙웰 GPU는 5만장 규모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및 피지컬 AI에 필요한 슈퍼컴퓨팅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 블랙웰 GPU의 장당 연산 역량은 1.96테라플롭스(TFLOPS·1TFLOPS=1초에 1조번 연산 가능)다. 메리츠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에 확보하게 되는 5만장을 단순 계산하면 현대차그룹의 연산 역량은 98엑사플롭스(EFLOPS·1EFLOPS=초당 100경번 연산 가능)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테슬라(200엑사플롭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수준으로, 중국 지리자동차(24엑사플롭스), 샤오미(11엑사플롭스), 화웨이(10엑사플롭스) 등이 현대차그룹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여타 내연기관 중심 완성차 업체들은 이러한 독자적인 SDV 준비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AI 컴퓨팅에 많은 투자를 한 테슬라, 중국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기존 완성차 경쟁사들보다 AI 모빌리티 분야에서 한 발 앞 서게 되는 셈이다.

메리츠증권 김준성 애널리스트는 “현대차그룹이 2028년에 발표할 스마트카에 탑재될 고성능 추론 컴퓨터의 협력 파트너 또한 엔비디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같은 AI 모빌리티 협력은 향후 현대차그룹이 관심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고도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양사는 또 한국 정부가 구축하는 국가 피지컬 AI 클러스터에 △엔비디아 AI 기술 센터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데이터센터 등에 공동 투자한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 기술진 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국내 차세대 피지컬 AI 인재 양성에도 기여할 예정이다.

KB증권 강성진 애널리스트는 “이번 제휴는 테슬라,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자율주행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현대차그룹의 의지를 보여준다”며 “피지컬 AI의 적용이 용이한 스마트 팩토리, 물류 등 제한적 공간에서는 가시적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