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타는 맛'은 기본…'보는 맛' 시대 왔다
by이배운 기자
2025.09.18 05:30
전기차 시대, 주행성능은 상향평준화 추세
새로운 경쟁력·차별 포인트는 '시각적 경험'
이동수단에서 '바퀴 달린 생활공간'으로
인포테인먼트·디자인 혁신 어디까지 왔나
[뮌헨(독일)=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자동차 경쟁력의 최우선 요소는 언제나 ‘주행성능’이었다.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기술 장벽이 높았던 내연기관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느냐가 브랜드와 모델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자 핵심 마케팅 포인트였다.
| 현대차가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25 IAA’에서 공개한 소형 전기차 콘셉트카 ‘콘셉트 쓰리’ 전면부에 픽셀 에니메이션 효과가 적용돼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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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판도는 달라졌다. 전기모터는 제작이 단순하고 기술적 장벽이 낮으면서도 가속 성능과 주행 질감은 오히려 내연기관을 능가한다. 이제 주행 영역만으로는 신모델의 차별화를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여기에 소프트웨어중심차(SDV)로의 전환까지 맞물리며 이른바 ‘자동차의 스마트폰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주행 성능에서 벗어나 디자인 감각과 편의 사양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고를 때 ‘통화 성능’은 기본으로 전제하고 디자인과 부가 기능을 꼼꼼히 따지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지난 9일(현지시간)부터 엿새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글로벌 모터쇼 ‘IAA 모빌리티 2025’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뿐만 아니라 IT·ICT 기업들까지 대거 참가해 자동차의 심미성과 사용자 경험을 강화하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를 앞다퉈 공개했다. 자동차 경쟁력이 이제는 ‘타는 맛’에서 ‘보는 맛’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영역은 헤드업디스플레이(HUD)다.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각종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어 주행 안전성과 편의성을 크게 높여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완전 자율주행 시대에는 차량 내 콘텐츠 경험을 극대화하는 ‘열쇠’로도 주목된다.
| 현대모비스 홀로그래픽 윈드쉴드 디스플레이 시연 장면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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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현대모비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차세대 HUD인 ‘홀로그래픽 윈드쉴드 디스플레이(HWD)’를 선보여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기존 HUD가 운전석 앞 유리 협소한 공간에 제한적으로 정보를 비췄던 것과 달리, HWD는 차량 전면 유리 전체를 거대한 투명 스크린으로 만들어 시인성과 몰입감을 높여주고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까지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BMW 역시 앞 유리 하단 전체를 활용해 운전자에게는 주행관련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조수석 탑승자는 유리 전면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파노라믹 비전’을 선보였다.
이처럼 콘텐츠 기능을 강화하는 흐름은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대를 겨냥한 포석이기도 하다. 운전자가 더 이상 전방을 주시하거나 직접 조향할 필요가 없게 되면, 인포테인먼트는 이동 시간 동안 탑승자의 지루함을 더는 필수 기능으로 자리 잡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 삼성디스플레이가 IAA 모빌리티 2025에서 선보인 언더디스플레이 카메라 기술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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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주행 기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LG전자가 IAA에 참가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LG전자는 콘퍼런스를 열어 “차량은 이제 단순한 이동수단에서 ‘바퀴 달린 생활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집에서 즐기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차량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전용 플랫폼을 제공해 SDV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가 IAA 대형 부스를 마련하고 OLED 기술을 대거 전시한 것도 같은 이유다. OLED는 뛰어난 시인성과 유연한 곡선 구현으로 차내 인테리어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OLED는 앞으로 프리미엄 자동차의 고급화·차별화된 실내 구현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될 것”이라며 자동차 부품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 메르세데스-벤츠가 공개한 GLC 위드 EQ 테크놀로지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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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내관뿐만 아니라 외관의 ‘보는 맛’ 역시 강화되고 있다. 전기차의 대용량 배터리와 정밀한 전자제어 기술이 결합하면서 내연기관차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정교한 조명·그래픽 연출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히 전기차 플랫폼은 내연기관차보다 구조가 단순해 설계 자유도가 넓다. 외관을 통해 브랜드의 개성과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영역이 크게 확장됐음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현대차는 이번 전시회에서 나란히 픽셀 그래픽 전면부를 적용한 전략 모델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두 모델 모두 후드 중앙에 도트형 픽셀 패턴을 배치하고 간단한 애니메이션 연출까지 구현했다. 외관이 고정된 내연기관차와 다르게 전동화 모델이기에 가능한 차별화 포인트다. 벤츠 관계자는 “내연기관 시절 엔지니어링의 상징이었던 그릴이 전동화 시대에는 감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무대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포르쉐 신형 카이엔 일렉트릭 (사진=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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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신형 전기차 ‘카이엔 일렉트릭’ 프로토타입에 차체 색상이 형형색색 변하는 랩핑을 적용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전류가 흐르면 빛을 내는 특수 소재를 도장에 입혀서 차체가 일종의 디스플레이처럼 작동하고 차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내연기관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매력 포인트다.
이처럼 전기차·SDV 전환과 함께 자동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도 달라지면서 인포테인먼트 시장은 앞으로 더욱 빠른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 네스터에 따르면 세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장 규모는 지난해 256억 달러(한화 약 35조 5200억원)에서 2037년 612억 달러(84조 9150억원)로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