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은 '대기업 직원'과 '청년', 누가 약자인가에 대한 질문”

by정병묵 기자
2025.12.02 05:20

[만났습니다]①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정년 60→65세 연장 대기업만 이득…청년 취업 막아
노동계, 정년연장이 초고령 사회 해결책처럼 과대포장
日, 정년 60세에 퇴직후 재고용 및 계속고용 제도 정착
사회 양극화·기업 부담 가중…노동유연성 확보해야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법정 정년 65세 연장 이슈는 우리 사회에 ‘누가 약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고소득 대기업·공공기관 직원들이 약자인가요,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청년들이 약자인가요?”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상근부회장은 올 한 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경제5단체 중 노동 및 노사관계 문제 ‘싱크탱크’인 경총이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정기 상여금 통상임금 포함’ 판결부터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정년 연장, 주 4.5일제 추진 등 핵폭탄급 이슈들이 1년 내내 휘몰아쳤다.

이 부회장이 최근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이슈는 정년 연장이다. 현재 국회에는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법안이 국회에 다수 계류 중이며, 더불어민주당은 연내 입법을 목표로 법정 정년연장을 포함한 고령자 고용 방안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만난 이 부회장은 “정년 연장 시 청년 고용은 위축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 직원들만 수혜를 본다”며 “사회적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지름길이며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밝혔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다음은 이동근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고령화 사회로 인구구조가 재편되며 정년 연장에 대해 찬성하는 국민들도 제법 있는 것 같다.

△근로조건 향상이나 복지 확대 같은 사안을 두고 단순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찬성 비율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바라는 보편적 기대심리와 잠재적 비용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이나 심층적 고려 없이 단순히 찬반만을 묻는 설문 방식의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국민들께서 정년 연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을 넘어 ‘더 오래 일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령화가 구조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현시점에서, 고령자의 지속적인 노동시장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은 경영계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정년 연장으로 어떤 부정적인 파급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건가.

△현재 정년제를 운영 중인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 집중돼 있다. 중소기업은 청년들이 유입 안 되니 고령자를 월급도 안 내리고 계속 쓰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법정 정년 연장의 직접적 혜택은 고용 여력이 있고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정규직’ 같은 특정 계층에만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노동계는 법정 정년연장이 마치 초고령 사회의 만능 해결책인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있다.

-2013년 정년 60세 연장법 통과가 고용 안정을 촉진하고 고령자의 경제 활동을 연장시킨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 않나.

△고령자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시장의 혼란과 부작용만 심화시켰다. 2013년 대비 2024년 정년퇴직자 증가율은 69.1%였는데 조기퇴직자는 87.3%로 훨씬 더 높게 나타났다. 제도 도입 취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 또 청년 취업난 가중,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 급증이 산업현장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했다. 높은 임금 연공성과 낮은 고용 유연성이라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은 그대로 둔 채, 법정 정년만 60세로 의무화하면서 기업은 고령인력 관리에 대한 부담과 법적 리스크만 대폭 증가한 셈이다.

[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최근 정년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실제 연구 결과가 그렇다. 경총이 분석해 보니 지난 20여년(2004~2024) 동안 대기업 정규직 중 고령자 고용은 492.6%나 증가했다. 반면, 청년 고용은 같은 기간 1.8% 감소했다. 특히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 중에서 고령자 고용은 지난 20여년 간 777%나 급증했으나, 같은 기간 청년 고용은 오히려 1.8% 감소했다. 임금 연공성이 높은 대규모 기업일수록 청년 고용 감소 폭이 더욱 크다. 좋은 직장을 다니는 고연봉 근로자가 청년 일자리를 빼앗게 되는 게 사실이다.

-청년들 입장에서도 정년이 연장되면 노후에 더 안정적인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법정 정년이 연장될 경우 그 혜택은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근로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큰데,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도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청년 문제는 대다수 ‘미취업 청년’에 집중돼 있으며 청년 취업난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고령자 고용을 늘리는 방식이 아닌, 기존 일자리의 점유 기간을 늘리는 법정 정년연장은 청년의 일자리 기회 자체를 축소할 수 있다.

-대표적 고령화 국가인 이웃 일본의 사례는 어떤지.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2006년 재고용 중심의 65세 고령자 고용 확보 조치를 시행하면서도, 법정 정년은 60세로 유지했다. 고령자 고용에 따른 기업의 비용 부담을 경감한 것이다. 일본은 법정 정년은 연장하지 않고 재고용 등 기업에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함은 물론,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정책을 추진해 현장에 고령자 고용연장을 안착시켰다. 그 결과 작년 일본 내 21인 이상 기업의 99.9%가 65세까지 고령자 고용확보 조치를 실시했고 3분의 2 이상의 기업이 재고용을 선택했다. 또 ‘고연령 고용계속 급부’ 제도를 통해 기업의 고령자 고용에 따른 임금 부담을 완화하고, 고령자의 소득 공백을 해소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고령자 퇴직후 재고용과 계속 고용 등이 고용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은 없을까.

△현대자동차가 재고용 제도를 정착시킨 대표 사례다. 몇 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본인이 원하면 건강 상태를 보고 계속 일하게 해준다. 월급은 70% 정도인데 웬만하면 다 동의하고 일한다. 퇴직 후 재고용은 기업 수요에 맞는 고령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하여 생산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노사 여건에 맞게 근로조건과 직무를 조정함으로써 사회적 효용을 높일 수 있다.

또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유연성 확보가 절실하다. 삼성전자와 TSMC, 현대차와 토요타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 임금 수준은 일본과 대만보다 20%가량 높다. 지금은 그럭저럭 가고 있는데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 수 있겠나. 고임금은 사회적 양극화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에도 리스크다. 기업이 살아 남아야 직원들도 직장에서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나. 정년 연장을 포함해 주 4.5일제 등 기업 활동을 더 어렵게 하는 논의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1957년생 △연세대 행정학 학사 △미국 밴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동국대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 23기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무역투자실 실장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현대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