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 변호사의 강변오토칼럼] 전기차 보급의 걸림돌과 규제의 사각지대

by박낙호 기자
2017.10.12 06:51

[이데일리 오토in 박낙호 기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만을 동력원으로 하는 순수 전기자동차는 먼 미래에나 실현 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배터리 기술 등 관련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일상 주행에서도 큰 불편이 없는 수준으로 전기차의 주행가능거리가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일부 차종의 경우 국내에 배정된 1,000대 물량이 사전예약 개시 2시간 만에 모두 판매되는 등 일반인들의 전기차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최신 전기차는 1회 충전 시 주행가능거리가 거의 400km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 정도 주행거리라면 일상적으로 사용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는 수준이고, 앞으로 수 년 내에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까지 주행거리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기차의 주행가능거리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내연기관 대비 훨씬 오래 걸리는 충전시간은 전기차 업계가 해결해야만 하는 또 다른 과제이다.

현재 전기차의 충전시간은 급속충전기를 이용하더라도 최소 30분 이상 소요되며, 완속충전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7시간에서 10시간까지도 걸린다. 이는 한국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주유소에서 소비하는 7분 정도의 시간과 비교하면 최소 5배 이상 긴 시간이다. 따라서 전기차를 큰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으려면,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으로 충전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가정이나 직장 근처에서 주차 중에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에서 주거하는 비율이 현저히 높은 국내 환경에서 주차 중에 전기차를 충전하기는 쉽지 않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이 적용되는데, 집합건물법에 따르면 아파트의 공용부분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통상 입주자대표회의라 불리는 관리자집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므로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동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러나, 전기차에 전용 주차공간을 내어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 또는 전기설비 설치에 따른 화재의 위험성과 같은 막연한 불안감 등을 이유로 입주자대표회의의 동의를 받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 보급에 가장 적극적인 제주도의 경우, 아파트 내 전기차 충전기 증가로 인한 수전용량 초과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수전용량에 여유가 부족한 아파트에서 여러 대의 충전기가 동시에 사용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아파트 전체가 블랙아웃에 빠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입주자대표회의 동의라는 관문을 넘어서더라도 충전기가 일정 수준을 넘게 될 경우 기술적으로 전기차 충전기 설치가 불가능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파트의 수전용량을 증설하거나 외부에서 별도의 전력선을 끌어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수 밖에 없는데 두 방법 모두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므로 아파트 입주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향후 수도권 및 주요 대도시에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 경우, 공동주택의 수전용량 문제가 전기차 보급의 새로운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계 당국에서는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 추진에 앞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전기차의 안전과 관련한 측면에서는 아직 많은 곳에서 규제의 사각지대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엔진이나 변속기 등의 동력장치가 모터와 배터리로 대체되므로 기존 정비기술만으로 전기차를 정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기차에 대한 정비자격 및 정비기술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이나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재 전기차의 정비는 각 차량 제조사의 직영 정비센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앞으로 전기차 보급이 확대되면 전기차에 대한 정비 수요도 증가할 수밖에 없고, 직영 정비센터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기차 보급 확대에 앞서 정비업계 종사자에 대한 재교육 및 신규 자격증 취득자에 대한 전기설비 관련 교육과 같은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전기치와 관련한 안전교육 특히 사고나 침수 등 비상 상황에서 전기차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전기차 충전설비와 관련한 안전점검 기준이 어떻게 되고 취급자에 대한 안전교육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기준이 전무한 실정이다.

전기차와 관련한 규제의 또다른 사각지대는 전자파 규제인데, 자동차와 관련한 전자파 기준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를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탑승자와 가까운 곳에 배터리나 모터 등 구동장치가 위치하게 되는 전기차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나 모터 등 구동장치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전자파가 실내에 유입될 가능성이 크고, 그 유입량이 기존 내연기관차 대비 훨씬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기차의 실내 전자파 발생량과 인체 유해성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며, 이를 기준으로 적정 허용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도심 대기오염이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은 그 해결책으로 파워트레인의 전동화를 내세우고 있으며, 일부 유럽 국가들이나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서는 장기적으로 내연기관 차량을 전면 금지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흐름이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흐름을 지켜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전기차 시대에 필요한 제도적 인프라가 무엇인지 적극 고민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 레이싱 트랙 주행을 비롯하여 타임 트라이얼 레이스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상구 변호사의 [강변오토칼럼]을 연재합니다. 강상구 변호사는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기업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고, 자동차부품 관련 다국적기업인 보쉬코리아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으며,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도 보유하고 있는 등 자동차와 법률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으로 이데일리 오토in 독자들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