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억원,무려 2천마력 로터스 전기차 이바야..그만한 가치가 있다?
by오토인 기자
2019.08.27 06:00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이준호 기자= 영국 스포츠카 업체인 로터스가 최초의 풀 일렉트릭 하이퍼카를 내놨다. 이름은 이바야(Evija)이다.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여성 이브(Eve)에서 유래를 찾았다. 최초의 존재,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란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허나 그렇게 따지자면 최초의 존재는 남성인 아담이 맞다. 왜 여성인 이브일까?
로터스는 현재 중국 지리(Geely)자동차의 자회사다. 이바야는 로터스가 2015년 지리에 인수된 후 중국 자본으로 탄생한 최초의 모델이다. 즉, 아담은 중국 지리차이고, 그의 갈비뼈를 뽑아 만든 이브는 영국 로터스인 셈이다.
이바야는 무려 2,000마력에 토크는 1,700Nm을 자랑한다. 800kW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하고도 경량화의 달인 로터스 답게 무게는 고작 1,680kg이다. 그리하여 0-100km/h는 3초 이내, 100-200km/h도 3초 이내이다. 참고로 페라리 F8의 100-200km/h 가속력은 4.9초다.
더 대단한 것은 충전 속도다. 전기차는 긴 충전시간 대비 짧은 주행거리가 단점이었다. 윌리엄 어드밴스드 엔지니어링이 개발한 충전장치는 800kW 충전량을 단 9분 만에 완충한다. 2020년 양산 목표라 현재 개발 중이다. 만약 기존 충전시설인 350kW를 이용한다 해도 80% 채우는데 고작 12분이 걸린다. 100%까지는 18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충전된 후 WLTP(국제표준 배출가스시험 방식) 기준 400km 주행이 가능하다. 가격은 세금 포함 약 25억원이다. 억! 소리가 난다.
로터스를 25억원이나 주고 산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 로터스는 하이퍼카 전문 제조 업체가 아니다. 풀 카본 파이버와 놀라운 성능이 뒷받침되지만 너무 비싸다. 그러나 아쉬워하긴 이르다. 아직 디자인이 남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서 비례(Proportion)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미의 기준을 종종 비례에서 찾는다. 이바야의 비례는 미드십 레이아웃을 기본으로 한다. 통상 내연기관 스포츠카의 미드십 레이아웃에서 프런트 오버행은 길 수밖에 없다. 커다란 인터쿨러를 장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바야는 극도로 짧은 오버행이 인상적이다. 이바야는 전기차다. 인터쿨러가 커야 할 필요가 없다. 4개의 인 휠 모터를 달았고, 배터리는 센터터널에 넣었다. 패키징 디자인에서 공간의 여유가 넘쳐나는 상황이니 오버행을 맘껏 줄일 수 있다. 오버행이 줄어들어 비례는 매우 콤팩트해 보인다. 로터스 혈통답다.
요즘 하이퍼카의 디자인 화두는 에어 인테이크와 에어 벤트를 직관적으로 연결해 에어로 다이내믹을 높이는 데 있다. 포드 GT와 애스턴 마틴 발키리가 그렇고, 페라리 SF90 스트라달레가 그런 관점이다.
이바야 역시 측면 패널에 에어 플로를 역동적으로 관장하는 형태가 존재한다. 이를 벤투리 터널(Venturi Tunnel)이라 명명했다. 벤투리 터널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벤투리(G. Venturi, 1746-1822)의 이름을 딴 장치다. 유체가 흐르는 관의 단면적이 좁아지면 기압이 낮아져 유속이 빨라지는 효과를 의미한다. 이바야에 자리 잡은 벤투리 터널은 공기의 유속을 빠르게 해서 후방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다운 포스는 늘리고, 와류는 줄인다.
터널의 끝은 리어 램프로 마감했다. 후면 패널의 섹션은 네거티브하다. 측면과 마찬가지로 카본 파이버 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역동성이 최대로 발휘됐다. 휘어 돌아가는 곡면율이 대단하다. 빨려 들어가고 빨려 나올 것만 같다.
빨간 LED의 리어램프는 벤투리 터널과 네거티브 섹션을 만나 사이버네틱 아트(Cybernetic Art 미적감각이 가미된 기계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기계인 이바야가 마치 숨을 쉬는 유기적 존재처럼 보인다. 기능의 형상화가 매우 잘된 디자인이다.
이바야 디자인은 2014년부터 수석 디자이너로 있는 영국인 Russell Carr가 맡았다. 그는 로터스 정신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현했다. 로터스 정신은 로터스 창립자 Colin Chapman의 한마디에 의해 탄생했었다.
모든 구성요소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기능을 중시하는 실용성이 로터스 정신이란 의미다. 달리 말해, 기능에 충실할 뿐 장식적 요소는 배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터스 대표 모델 Elise, Exige의 인테리어는 알루미늄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1억 원에 육박하는 가격인데도 센터패시아는 장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로터스 정신을 대표했던 사례다.
이바야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이런 기능 중심의 로터스 철학이 충분히 미학적으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대시보드는 도어와 도어를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Bridge) 같다. 기존의 대시보드 형태를 파괴하며, 이렇게 묻는 듯하다. '대시보드의 기능이 무엇인가?' 대시보드는 하나의 커다란 틀이었다. 송풍구의 바람이 지나가는 틀이었고, 에어백을 담는 틀이었고, 글로브 박스와 클러스터, 센터 패시아를 품는 틀이었다. 틀의 기능을 이행하는 데 있어 면적을 오롯이 다 사용하진 않을 것이다. 틀에는 틈이 있고, 틈이 있음 여백이 있기 마련이다.
이바야는 글로브 박스 따위는 과감히 없애 버렸다. 센터 패시아는 품는 대신 연결로, 송풍구는 따로 빼내어 대시보드 부담을 덜어줬다. 기능적 쓰임새를 제외하곤 틈과 여백은 모두 덜어냈다. 뼈대만 남았지만 앙상하진 않다.
클러스터와 연결된 대시보드 브릿지도 송풍 터널의 기능을 빼고 남을 법한 여백은 모두 덜어냈다. 마치 바우하우스 시절 철제 프레임에 가죽을 이어 만든 바실리 체어 같다. 싸고 쉽게 만들기 위해 제작됐지만, 의외로 아름다워서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센터 패시아도 마찬가지다. 인체공학을 십분 발휘해 기울인 형상은 급격한 코너링 시에 손잡이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슬림하다. 이런 브릿지 타입 또는 플로팅 타입 콘솔의 센터 패시아는 전자 버튼식 기어노브 등장으로 가능해진 디자인이다. 특히 다단 트랜스미션이 의미 없는 EV 차량에서 독창성을 살리는데 매우 효과적인 디자인이다.
센터 패시아의 디자인 특징으로 허니콤(Honey comb) 패턴을 들 수 있다. 람보르기니가 주로 쓰는 방식이지만, 로터스는 모더니즘 스타일로 변화시켰다. 장식은 배제하고 간결하며 직관적인 기능을 챙겼다. 한 가지 용도만 챙기면 로터스가 아니다. 터치식 패널은 버튼 간 물리적 구분이 없어서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바야의 터치패널은 허니콤 형태에 오목한 3D 형상을 입혔고, 햅틱 반응은 기본으로 해 오작동을 줄이는 용도까지 챙겼다.
익스테리어 디자인에서도 다용도의 로터스 정신을 볼 수 있다. 전면부는 총 5개의 에어 인테이크가 있다. 하단의 3개가 중심적인 역할을 힌디. 중앙의 것이 센터터널의 배터리를 냉각시키고, 양 측면의 것은 브레이크 냉각과 더블어 프런트 에어터널을 형성한다. 이를 들여다보면 액슬이 F1 머신처럼 보인다. 단순하지만 제작하려면 복잡하고, 완성됐을 땐 독특하면서도 상당히 기능적이다.
이바야는 로터스 디자인 철학에 완벽하게 부합된다. 구성요소의 다용도화(化)가 집약된 디자인이다. 지금까지 도어 손잡이만 전동으로 작동시킬 줄만 알았지, 카메라 타입의 사이드 미러까지 적용할 줄은 몰랐다. 엔진이 없는 미드십 형태라 후면 창은 무용지물이라 생각할 것이다. 전기차라고 감성마저 없애는 건 로터스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바야의 후면 창으론 배터리팩 커버와 인보드 서스펜션이 보인다. 나름 키네틱 감성도 알뜰하게 챙겼다. 이 뿐만이 아니다. 로터스의 레터링은 레터링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후진을 위한 램프로서의 역할도 겸비했다.
25억원의 풀 일렉트릭 하이퍼카 이바야는 로터스에게 실리적인 모델이 아니다. 아울러 실험적인 콘셉트로만 머물지도 않았다. 꽤 오랜 기간을 거쳐 실현 가능한 상징적인 모델로 태어났다.
내연기관을 단숨에 뛰어넘는 놀라운 성능과 더블어 기능적 아름다움까지 챙겼다. 기능적 아름다움은 형태가 단순히 기능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것이다. 형태는 기능과 동등한 입장에 서서 매력을 발산한다. 이 아담과 이브의 조화로운 결과물은 25억원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