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트럼프 관세 리스크, 이제는 '관'의 시간

by정병묵 기자
2025.04.03 04:45

작년 탄핵정국 후 사실상 정부 리더십 부재
트럼프 관세 리스크 그간 기업이 직접 대응
자동차·철강 등 효자 품목 수출 위기 고조
정부가 고삐 쥐고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이데일리 정병묵 산업부 차장] “한국은 지난 8년간 1600억달러 이상을 미국에 투자했고 80만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는 1986년 미국에 진출한 이후 200억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57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리더십과 함께 미국 산업의 미래에 더 강력한 파트너가 되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가 정상회담에서 오갈 법한 위 발언들은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다. 첫 번째 발언은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의 말이다. 최 회장은 지난 2월 19~21일 경제사절단과 함께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재무부 등을 방문해 ‘통상 아웃리치(물밑접촉)’를 진행했다.

두 번째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발언이다. 정 회장은 지난달 24일 미국 조지아주 신공장 준공식에 앞서 백악관을 찾아 향후 4년간 미국에 2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관세 전쟁 우려가 커지자 우리 기업인들이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대응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미국 대통령 교체라는 중대한 시기, 통상 외교 무대에 공직자는 없었다. 우리 경제의 향방을 가를 관세 폭풍이 다가오니, 보다 못한 기업인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항간에 “외교도 그냥 어디 그룹 총수가 하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작년 11월 이후 우리 경제는 극심한 아노미 상태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 결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당시부터 줄곧 강조했던 관세 압박을 이어가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리더십 부재 상태였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기업이 만든 게 아니다. 고환율, 고유가, 고물가 ‘삼중고’ 속에 우리 기업들은 투자를 단행하고 외화를 벌었지만 관이 해야 할일까지 사실상 떠맡아왔던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2일(현지시간) 오후, 3일 한국시간 새벽 구체적인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즉각 시행에 들어간다. 수출 중심의 경제체제인 우리나라는 대미 수출 1위 품목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이어 상호관세 쇼크까지 덮치면서 초비상 사태를 맞게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까지 효력이 사라지게 되는 이번 결정으로 미국과 새로운 통상 규칙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세계 주요 국가의 보호무역 흐름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국가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주 “(관세) 협상을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에서도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가 시작이 될 것”이라며 “그래서 4월 2일 이후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말대로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더라도 경제는 차질 없이 돌아가야 한다. 그간 기업이 부득이하게 대체했던 통상 리더십을 관이 쥐고 대혼란의 시기를 추스를 골든타임을 더 이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