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만 25% 관세…현대차·기아, 美서 폭스바겐보다 비싸다

by이배운 기자
2025.09.25 15:15

美, 유럽車 관세 15% 인하…韓만 협상 지연
아이오닉5·EV6, 차량당 1만달러 이상 관세 부담
현대차 상반기 영업익 12.7%↓…관세 여파 직격탄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일본에 이어 유럽산 자동차와 부품의 관세율을 15%로 낮췄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관세 부담을 덜게 된 반면 한국산 차량은 여전히 25% 고율 관세가 적용되면서 현대차·기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도 평택항 동부두 내 기아 전용 부두 야적장에 선적을 기다리는 차량 수천대가 세워져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는 유럽산 자동차와 부품의 관세를 15%로 확정했다. 이에 포르쉐 주가는 장중 3.8% 급등했고,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도 각각 1.4%, 1.1% 상승하는 등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방안에 구두 합의했지만, 3500억 달러(약 490조원) 규모 투자 펀드를 둘러싼 이견으로 서명이 지연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산 승용차에는 여전히 25%의 고율 관세가 매겨지는 상황이다.

이는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가격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기본 가격이 4만 달러대 중후반에 형성된 가운데, 한국 생산 물량에 25% 관세가 붙으면 차량당 부담이 1만달러 이상 불어난다.

비슷한 급의 폭스바겐 ID.4와 볼보 EX30의 가격은 각각 4만 5000달러, 3만 6000달러에서 시작한다. 상위 트림 가격은 4만 달러대 중반까지 오르지만 유럽산 직수입 모델은 관세율이 15%로 낮아 인상 폭이 제한적이다. 여기에 일부 트림은 북미 현지 생산으로 공급돼 보조금까지 더해지면서 가격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동일 세그먼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서 한국차가 더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중심의 중형 SUV 시장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싼타페와 쏘렌토는 미국에서 3만 5000~3만 9000달러 수준의 트림이 주력이지만, 여기에 25% 관세가 붙으면 차량당 약 9000달러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반면 폭스바겐 티구안의 가격은 3만 2000달러대, 아틀라스는 3만 6000달러대에서 시작하고 15% 관세율까지 적용되면 더욱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가격 인상 전가를 억제하고 있지만, 그 부담이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50조 6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13조 80억원으로 12.7% 급감했다. 2분기만 놓고 보면 관세 여파로 현대차는 영업이익이 8282억원 감소, 기아는 7860억원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확대해 관세 충격을 피한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 구금 사태가 발생해 준공 일정이 지연되면서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럽 등으로 수출 시장을 넓혀야 하지만, 경기 침체와 중국 전기차의 약진으로 역시 쉽지 않다”며 “정부가 통상 협상에 속도를 내고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